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악(萬惡)의 근원(the source of all evil)’이 미국이라고 주장하는 반미주의자들의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지만, 현재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 원인 제공자가 영국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충분한 역사적 이유와 근거가 있다. 바로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과 맥마흔-후세인 서한(McMahon-Hussein Correspondence·맥마흔선언)이 현 중동 유혈 사태에 원인을 제공한 직접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두 선언과 서한에서 영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이익만 관
누가 영국에는 인종 차별도 없고 종교 차별도 없다고 말하는가? 지난 8월 30일 세상을 떠난 모하메드 알 파예드(1929~2023)의 쓸쓸한 마지막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영국 언론을 장식하던 그의 사망 소식이 한국 언론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걸로 봐서 알 파예드는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인물이거나 이미 뉴스거리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아직도 세계의 연인인 영국 왕실의 전 세자빈이자 현 찰스왕의 전처인 다이애나의 애인이었던 도디 파예드라고 한다면 ‘아!’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특히 그 둘은 1997년 8월 31일
최근 들어 주변 친지들로부터 “왜 푸틴은 아직도 저렇게 인기가 높은지 이해를 못하겠네요?”라는 질문을 부쩍 많이 받는다. 분명 ’아직도’라는 단어 앞에는 ‘러시아가 전쟁에 이기지 못한 채 헤매고 있고 청년들이 전사하고 있는데도’라는 전제가 붙어있을 것이다. 실제 작년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마치 우크라이나 평원의 진흙탕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만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80%가 넘는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이 이상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
현재 영국에서는 절대권력인 노동조합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중대한 법 하나가 집권 여당인 보수당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파업법(the Strikes Bill)’, 정식 명칭은 ‘최소 서비스법(Minimum Service Levels Bill)’이라는 것으로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공서비스 기관(보건, 교육, 화재와 구조, 운송, 원자력 폐기, 국경수호)은 파업 중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서비스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라는 것이 골자다. 사실 리시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인기도
필자의 삶에서 크게 자랑할 만한 일은 별로 없지만 지금은 러시아라고 불리는 소련과 관련해 몇 개의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 최초의 상사 주재원’ ‘한국 여권으로 받은 최초의 소련 복수 비자’ ‘한·소 최초의 합작회사 법인장’ 등이다. 필자가 이런 타이틀을 달고 모스크바에 주재할 무렵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를 막 시작했었다. 한국과의 수교는 그러고도 수년 뒤인 1990년 2월에야 ‘영사처’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처음 이루어졌다. 당시 최초의 상사 주재원 타이틀을
지난 8월 말 BBC 주요 프로그램인 ‘뉴스나이트’ 대표 진행자였던 에밀리 메이틀리스가 BBC를 저격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한 TV 콘퍼런스의 주요 연사로 나선 메이틀리스는 45분간에 걸친 강연 중 BBC 재직 중 자신이 겪어야 했던 언론 중립에 관한 논쟁적 일화를 밝히며 콘퍼런스에 참석한 TV 업계 종사자들과 언론 자유를 논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 언론계에서는 지금도 언론 자유에 관한 진지한 자문과 반성의 파문이 일고 있다. 메이틀리스가 밝힌 일화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5월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총애를 받던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현재 한국 언론에서 연일 다루고 있는 ‘외교적 홀대’ ‘외교 참사’, 거기서 더 나아가 ‘국격(國格)’ 논쟁 같은 것들을 영국 언론에서는 본 적이 없다. ‘국격’이란 단어를 네이버 영어사전에 넣어 봤더니 ‘national dignity’ ‘national status’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러나 이 용어들을 구글링해 보면 영국 매체 어디서고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다. ‘national prestige(국위)’로 찾아봤지만 우리가 쓰는 용어인 국격에 해당하는 글들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영국은 오랫동안 자기
세기의 장례식이 끝났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은 ‘60년을 준비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러졌다. 지난 9월 19일 아침 11시 왕실 직할 성당인 런던 웨스터민스터사원에서 시작해 런던의 관문 히드로공항 근처 여왕의 주말 거처인 윈저성에서 계획대로 오후 4시30분 끝이 났다. 500여명의 해외 국가 정상 조문객들과 국내 주요인사 2000여명의 의전을 기계처럼 해낸 영국 정부의 저력은 칭찬받을 만했다.12일간의 국장 기간 동안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들이 수많은 여왕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
어느 국가, 어느 민족이든 한두 명의 ‘국민가수’는 갖고 있다. 이런 가수들은 조건이 있다. 우선 활동하면서 모든 연령대와 성별에 걸쳐 인기가 있어야 한다. 또 사후에도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랑받아야 한다. 영국에는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한 명의 명실상부한 국민가수가 있다. 바로 캐슬린 페리어(Kathleen Ferrier·1912~1953)다. 페리어는 올해로 탄생 110주년, 영면한 지 69년을 맞는다. 하지만 아직도 영국인의 사랑을 받으며 음반이 꾸준히 발간되고 팔리는 ‘현역’ 가수이다. 탄생 110주년임에도 ‘현역’ 가수인 이
영국인들은 2008년 보리스 존슨의 런던 시장 취임 이후 매일 어떤 식으로든 그의 덥수룩한 금발을 보지 않고는 하루를 지날 수가 없었다. 그가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모두들 궁금해할 정도였다. 그만큼 존슨 총리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영국 정치 역사상 희대의 풍운아이다. 그런 그가 연이은 정치 스캔들 끝에 결국 측근 반란으로 지난 7월 5일 사임을 발표했다. 배반과 음모와 권력투쟁 사태로 이어진 추락의 과정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존슨의 몰락은 지난 6월 7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보수당 소속 일부
영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주거 방식인 코리빙(coliving)과 코하우징(cohousin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전역에 있는 9000여개의 코리빙마다 긴 대기자 명단을 갖고 있어 입주하려면 상당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특히 코리빙 주민의 거의 4분의1이 노령층으로, 노인들이 이 새로운 형태의 주거 방식에 열광하고 있다. 영국 전역에 19개의 단지가 있는 코하우징도 60여개가 새로 건설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코리빙은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코하우징은 한 주택 단지 안에 여러 가구가 사는 형태이다. 이 두 주거 방식이 기존의
영국 보수당이 성추문으로 심하게 얼룩지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권이 성추문으로 무너질 지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영국의 과거 정치사를 보면 정권 말기에는 항상 집권 여당이 성추문에 휩싸였었다. 이번에도 보수당이 위기를 쉽게 넘기기 어려울 듯하다는 전망이 영국 정가에 파다하다.영국 하원의 체면은 이미 지난 4월 영국 정론 주간지로 평가받는 ‘선데이타임스’의 성추문 보도로 추락한 바 있다. 당시 선데이타임스는 영국 하원의원 56명이 ‘성 관련 부적절한 행동(sexual misconduct)’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지난 3월 초 14박15일 일정으로 지중해 섬나라인 북사이프러스를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도 되지 않은 지난해 3월 초 ‘못 가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영국 여행사 투어 예약을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 사태가 많이 진정돼 투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정과 가격이어서 여행 충동을 막기도 힘들었다. 왕복 항공권과 가이드가 딸린 1주일 버스투어가 포함된 14박15일 여행 경비가 고작 249파운드(약 39만원)라니 믿기는가. 더군다나 투어가 끝나고 나면 나머지 7일간을 코발트색 지중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최근 영국에서 불고 있는 K열풍을 상징하는 식당 중 하나가 ‘요리(YORI)’라는 곳이다. 삼성전자를 퇴직한 후 기업을 하듯이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주인장이 맹렬하게 지점을 확장 중이다. ‘요리’의 김종순(41) 사장은 삼성전자 유럽총괄에 다니다 4년 전 런던 한복판 피커딜리에 50석 규모의 한식당을 열었다. 1호점 이후 5년 만에 지점 9개를 열어 성업 중이고 지금 10호 개점을 준비 중이다. 영국 한류를 이끌고 있다고 자부하는 김종순 사장을 만나봤다. - 현재 ‘요리’ 지점이 어디에 있나. “피커딜리 1호점을 시작으로 코벤트가든
정말 감개무량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민학교(우리 때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때 소풍 전날 흥분돼 잠이 안 오던 기억이 났다. 2020년 2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인 이탈리아 지중해 시칠리아를 7박8일 동안 갔다 왔다. 런던~시칠리아 항공료가 단돈 7만여원이번 시칠리아 여행은 작년 초여름에 갑자기 결정되었다. 유럽 최대 저가항공 ‘이지젯’의 런던~카타니아(시칠리아 제2의 도시) 왕복요금이 겨우 47파운드(당시 환율로 7만2850원)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다. CD와 스트리밍에 밀려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던 LP가 이제 CD보다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국에서도 2020년 480만장의 LP가 팔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CD 판매고를 앞섰다. 금액으로는 2019년에 비해 30%가 오른 8650만파운드(약 1384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1989년 이후 30여년 만의 최고 판매액이다. LP 음반 재유행에 힘입어 영국 중고 음반 시장도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스테레오 LP 음반이 처음 발매된 1950~1960년대는 영국 음반 황금기였고 세계
유럽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All Saint Month)’이라고 부른다. 돌아가신 모든 영혼을 기리는 예식이 각 교회마다 치러지는 시기다.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난 뒤 유럽인들은 성탄이 있는 12월로 또 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사람들의 삶에서 장례식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그래서 각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절차와 예법이 있다. 모든 것이 바뀌는 세상이지만, 영국인들은 아직도 장례식만큼은 200년 전인 빅토리아 시대 전통을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장례식 조문객은 반드시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조의
1 공직자 공관 폐지하자한국에는 수많은 고위 공직자 공관이 있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3부 요인 공관, 전국 도지사 공관을 비롯해 각 정부 기관도 장을 위한 공관을 갖고 있습니다. 공직자들의 임기 동안 무상 제공되는 이런 공관이 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청와대처럼 경호와 의전 문제가 혈세 절약 차원을 넘어서는 경우 말고는 특권의식 불식 차원에서 모두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공직에 임명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공관 거주 공직자는 대부분 자신의 집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필요 이상의 공관을 제공할
영국 정치를 보면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긴 의회(Parliament)라는 영어 단어가 프랑스어 ‘paler’, 즉 ‘말하기(to talk)’에 어원을 두고 있다. 영국 정치의 시작과 끝이 이뤄지는 의회라는 곳은 결국 말로 국정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이는 장소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정치인들은 참 말을 잘한다.영국은 내각책임제라서 봄의 부활절 휴가, 여름 휴가, 겨울 성탄 휴가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의회가 열린다. 총리를 비롯한 장·차관들은 물론 하원의원들도 의회에서 살다시피하면서 동료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입법·행정·사법의 분권을 ‘민주주의의 꽃’인 삼권분립제도라고 말한다. 권력의 삼권을 개인이나 집단이 장악한 뒤 절대권력을 휘두를 독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그러나 절대적인 장치이다. 1880년대 중반의 영국 정치인 제1대 액턴 남작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원래 이 말 앞에는 ‘원래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Power tends to corrupt)’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어떤 권력이든 부패하기 마련인데 거기다가 절대권력까지 가지면 절